은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돈을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단순히 돈을 모으는 문제를 넘어, 누구와 함께 은퇴를 맞이하는가가 핵심이다. 대부분의 경우 은퇴는 ‘부부’가 함께 맞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퇴 준비를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혼자 준비하는 은퇴와 부부가 함께 설계하는 은퇴는 분명 다르다. 소득, 지출, 생활 패턴, 건강 상태까지 모두 두 사람의 상황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은퇴 이후의 삶이 길게는 30년 이상 이어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부부가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준비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 글에서는 부부 공동 은퇴설계와 혼자 준비할 때의 차이를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본다.
1. 소득과 지출 구조, 두 사람의 돈이 얽히는 문제
혼자 은퇴를 준비할 때는 본인의 소득과 자산만 계산하면 된다. 하지만 부부 공동 은퇴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두 사람의 소득원이 다를 수 있고, 은퇴 시점도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남편이 60세에 은퇴하고 아내가 55세에 은퇴한다고 가정하면, 5년 동안은 한쪽에서만 소득이 발생한다. 이 시기를 어떻게 메울지에 따라 은퇴 자금 계획이 크게 달라진다. 또한 국민연금이나 퇴직연금도 개인별로 다르게 산정되기 때문에, 연금 수령액의 합계와 수령 시점을 맞추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지출 역시 마찬가지다. 혼자 산다면 본인의 생활비만 고려하면 되지만, 부부는 생활비 구조가 더 크고 복잡하다. 의료비, 식비, 주거비가 두 배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한쪽이 아프거나 돌봄이 필요한 상황이 생기면 지출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따라서 부부 은퇴설계에서는 각자의 소득 흐름과 공동 지출 패턴을 정확히 파악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한 비상 자금을 준비해야 한다.
2. 생활 방식과 가치관은 두 사람이 같은 그림을 그려야 한다
혼자 은퇴를 준비할 때는 내가 원하는 은퇴 생활만 고민하면 된다. 하지만 부부는 다르다. 서로의 생활 방식과 가치관을 어떻게 조율하느냐에 따라 은퇴 이후 삶의 만족도가 크게 달라진다.
한쪽은 도시 생활을 원하지만 다른 한쪽은 전원생활을 꿈꿀 수 있다.
한쪽은 여행을 자주 다니고 싶어 하지만 다른 한쪽은 집에서 조용히 지내길 바랄 수 있다.
소비 습관도 다르다. 어떤 사람은 절약을 중시하고, 어떤 사람은 여유 있는 소비를 선호한다.
이런 차이를 무시하고 각자 준비하다 보면, 은퇴 후 갈등이 커지고 자금 운용도 엇나간다. 부부 공동 은퇴설계에서 중요한 것은 대화를 통한 합의다.
함께 은퇴 설계를 할 때는 월 생활비를 얼마로 잡을지, 여행은 1년에 몇 번 할지, 부동산은 유지할지 처분할지 같은 구체적 사안들을 미리 논의해야 한다. 결국 돈의 문제가 아니라, 은퇴 이후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한 가치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3. 건강과 돌봄은 혼자 대비할 수 없는 현실
은퇴 이후 가장 큰 변수는 바로 건강이다. 혼자 은퇴를 준비할 때는 자신의 건강 상태만 고려하면 되지만, 부부 공동 은퇴에서는 상대방의 건강 문제까지 함께 고려해야 한다.
특히 평균 수명보다 기대수명이 길어진 요즘, 부부 중 한 명이 아픈 경우 다른 한 명이 돌봄 역할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의료비 자금이 아니라, 돌봄 체계와 간병 비용에 대한 준비다. 장기요양보험, 실손보험, 간병 서비스 이용 계획 등이 모두 은퇴 설계 안에 포함돼야 한다.
또한 평균적으로 여성의 기대수명이 남성보다 길기 때문에, 한쪽이 먼저 세상을 떠난 뒤 남은 배우자의 생활비와 거주 문제도 중요한 과제다. 부부 공동 은퇴설계에서는 ‘함께 살 때’와 ‘한쪽이 홀로 남을 때’의 시나리오를 동시에 고려해야 안정적이다.
혼자 준비하는 은퇴와 부부가 함께 준비하는 은퇴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혼자는 단순히 ‘내 자산 관리’의 문제라면, 부부 공동 은퇴는 두 사람의 삶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의 문제다. 소득과 지출 구조, 생활 방식과 가치관, 건강과 돌봄이라는 세 가지 요소는 모두 부부가 함께 맞춰야만 해결할 수 있다.
은퇴는 종착점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선이다. 혼자가 아닌 둘이 함께 서는 출발선이기에, 더 많은 대화와 더 깊은 계획이 필요하다. 지금부터라도 배우자와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현실적인 숫자와 감정을 함께 맞춰보는 것이 가장 좋은 은퇴 준비다.